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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연 Grace and Gravity

하늘의 '빛'과 땅의 '그림자'가 하나 되는 풍경


"주상연은 미국 서부의 새로운 빛을 만나 한동안 막혀있던 사진 언어에 신선한 기운을 받는다. 언어로 규정되는 이성적 세계와 언어를 넘는 불명확한 세계의 간극에서 신비한 찰나적 현상을 목격하게 되고, 이때 저 너머 잠재되었던 감성의 기억을 새로운 창을 통해 환기시킨다. (중략) 그리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들판의 풀잎이나 잡초들에서부터 여기저기 널브러진 대자연 현상과의 만남을 필름 속에 채집하였다. 작가에게 이 이미지들은 망망대해의 작은 모래알처럼 하찮고 막연한 것이었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 사진들이 엮여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관훈(큐레이터,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지난 2007년 주상연은 홀연히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난다. 2004년까지 세 번의 개인전을 가진 작가로서 새로운 자극과 환경의 변화가 필요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FAI)에서 린다 코너(Linda Connor, 1944~)를 만나면서 사진적 프레임의 경계를 한 발짝 넘고, 사진매체의 원론적인 의미에서부터 예술가의 삶까지 의심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미국 서부의 광활한 대자연에서 내면에 잠재되었던 영적인 감각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어려서부터 자연과 종교 속에서 노니며 하나가 되었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한국을 떠나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그리고 린다 코너에게서 받은 영감은 이전보다 더 편안해진 상태에서 자연과 사물을 대면하게 했다. 주상연은 SFAI에서 린다 코너의 '성과 속' 수업을 들으며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경계지점에서 생기는 무수한 이미지들에 관해 사유했다. 빛과 어둠, 현실과 초현실은 서로 구분되기보다 공존하면서 완전한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주상연의 작업 '중력과 은총'(Grace and Gravity : 작가의 의도에 따라 한글과 영문 각 작업제목의 표기 순서가 다르다.)은 미국 서부의 무한한 풍경 속에 자신을 풀어놓고 본능의 욕망으로 대지를 들여다보거나 야생의 숲에 몸을 내던지듯 카메라로 채집한 이미지들이다. 하늘의 빛과 땅의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뒤섞이고 하나가 되는 순간들이 포착되었다. 모두가 신비로운 순간들이지만 한순간 금방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그리고 자연을 찍은 것이지만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빛이 내리고 있는 실존적인 상황들이다. 이러한 찰나의 순간과 실존적인 상황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자세와도 맞닿아 있다. 삶을 바라보는 인식의 태도가 깊어지며 뭔가를 설명하려기보다 응시하게 되고, 관념적인 사유는 경험적인 사유로 넘어가게 되었다.

 주상연은 미국에서 4년을 유학하며 'Grace and Gravity' 시리즈 외에도 'Wonder on Parnassus' 시리즈도 작업했다. 두 시리즈 모두 그녀가 직접 만든 책 이외에는 전시로 한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작업들이다. 그리고 국내로 돌아와서는 이 작업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지상의 빛'(Light on Ground) 작업도 선보였다. 빛에 대한 시선이나 사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주상연의 작업들이다. 그리고 주상연은 예술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려는 활동도 새롭게 시작했다. 미술관과 출판사인 닻미술관과 닻프레스를 설립한 것이다. 이처럼 몸으로 체득한 예술을 삶의 터전에 뿌리내리려는 주상연의 시도는 안팎으로 계속되고 있다.


'중력과 은총'은 미국 서부의 자연에 빛이 내리는 상황을 촬영한 작업이다. 작업 제목인 중력과 은총 즉, 속된 것과 성스러운 것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작업 제목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시몬느 베이유의 책 '중력과 은총'에서 빌려온 것이다. 책은 인본적인 현실과 그 현실을 역행하는 초월적인 것이 공존하는 삶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다. 인간의 땅과 신성한 하늘, 즉 하늘의 빛과 땅의 그림자가 만드는 드라마를 사진기를 통해 보고 있다는 생각에서 이 제목을 택했다. 어떤 기준으로 정의하고 구분하기보다는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경계에서 생기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자연, 빛, 영적인 것에 관심이 커진 듯하다. 미국에서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빛에 대한 본질적인 관심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하면서 꾸준히 계속되어 왔고, 나에게 빛은 인간의 이성과 지식을 넘는 어떤 신비한 영역으로의 초대이기도 하다. 미국 서부사진의 역사를 대표하는 SFAI에서 30년간 사진을 가르치고 있는 린다 코너와의 만남을 통해 사진매체의 고유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오히려 사진프레임 밖의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스냅사진 같지만 이미지들이 서로 엮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등 한 장 한 장에서 오랜 응시와 사유가 느껴진다. 작업에 임하는 작가의 태도와 이미지들이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미지의 의미는 열려있고,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보는 이들도 자유롭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촬영할 때는 피사체(대상) 앞에서 의식이나 이성적 사고를 버리고 직관과 본능의 눈으로 반응하길 원한다. 나중에 이미지를 선택하고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유를 통해 다시 내가 본 것을 이해하는 과정을 갖는다. 낱장은 그저 침묵하는 이미지일 뿐이지만 여러 이미지가 함께 있을 때에 이미지 사이의 행간에서 읽히는 공기적인 움직임이 내 사진의 언어이다. 주로 자연에 반응해 찍지만 소재를 제한하거나 분석하고 싶지 않으며, 빛이 닿은 모든 것이 내 사진의 소재가 될 수 있길 원한다.


미국에서 귀국해 한국의 자연을 대상으로 '지상의 빛'(Light on Ground)을 작업해 전시도 했다. 작가가 느끼는 동서양 자연의 차이가 궁금하다.

 미국 서부의 자연은 경탄을 자아내는 스펙터클한 자연이다. 지형, 나무와 하늘의 빛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으며, 따뜻한 날씨와 강한 태양으로 인해 색채와 질감이 다양하고 풍성한 식물들이 있다. 이때문에 '중력과 은총'은 보다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지상의 빛'의 사진들보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이미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국에 돌아와 다시 보게 된 우리 땅의 풍경은 안으로 스며있고 오래 응시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내 몸과 같은 느낌이었다. 첫 눈에 매혹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남아있는, 질리지 않는 풍경 속에 스며있는 빛을 찾아가고 있고, 이는 꾸준히 지속하고 싶은 작업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시보다는 책(수제책)을 통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작업을 발표해왔다. 어떤 면에서 책이 더 매력적인가?

 전시는 책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다. 책의 형식으로 이미지를 엮어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은 사진가에겐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사진을 알게 된 것도 사진책을 통해서였고, 책으로 내 작업을 정리할 때,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는 느낌을 받는다. 개별의 단독적인 이미지보다는 함께 어울려 연결되며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공간이 내 사유의 공간과 닮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이면서 미술관 닻미술관과 출판사 닻프레스를 운영하고 정기간행물 '깃'도 발행한다. 1인다역을 자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 사람의 좋은 작가도 필요하지만, 예술가가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는 토양이나 환경이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문화가 있고, 풍성한 나눔과 소통 속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이 창조되고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들이 많지만 경기도 광주의 닻미술관과 서울 구의동의 닻프레스, 잡지 깃이 그런 근력이자 터가 되어주길 바라고, 그 뜻에 공유하는 창작인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하다.

  미국 근대사진의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작가로서의 활동뿐만이 아니라 291갤러리와 잡지 '카메라워크'(Camera work) 등을 통해 사진매체의 확장과 새로운 작가양성을 꾀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구체화했다. 나 역시 개인 작업을 지속하는 것과 내가 하고 있는 일들(닻미술관, 닻프레스, 깃)은 결국 예술적 나눔과 소통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원을 가꾸는 마음으로 내 사진과 책, 공간과 사람을 키워가려 한다.





글ㅣ이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