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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on Paper 종이 위의 예술


디지털 매체가 주가 되는 시대에서 종이를 통해서 창작 욕구를 표현하는 일은 어쩌면 아날로그의 물리적 속성을 지키려는의지와 인내의 소산인지도 모르겠다. 그 노력이 만들어낸 종이작품이 한데 모였다.

〈종이 위의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하는 닻미술관의 3주년 기념 전시의 화두는 종이로, 아날로그만이 낼 수 있는 감성을 담았다. 물론, 직관적인 이미지이기보다 추상적이며, 현학적인 이미지를 택했다. 캐더린 와그너 (Catherine Wagner)의 사진, 테레사 캔즈(Theresa Ganz)의 사진조각,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의 신문작업과 영상 다큐멘테이션, 이승철의 북 컬렉션을 한데 모았는데, 모두 인쇄매체를 통해서 창작 욕구를 표현한 작품이다.

캐더린 와그너는 인간의 지적 활동의 구성 요소를 시각 이미지로 변환해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한다. 그녀의 작품 <Trans - Literate>은 지적 활동의 기반이 되는 책을 바탕으로 연출한 사진이다. 유리박스 안에 오랜 시간 품은 책이 놓여 있는 사진인데 무슨 영문인지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이 책은 모두 점자로 돼 있다. 책이 펼쳐져 있지만 정작 책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녀는 이런 반어적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라고 자문하다. '다른 글로 옮겨 적다'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놓인 책에 자신만의 문자를 담으라는 의미일 테다. 테레사 갠즈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인쇄한 이미지를 찢거나 오린 후 이어 붙이는 작업을 거쳐 추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형태를 구축한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합성이 아닌 하나의 조각이자, 경계를 허무는 과정에 가깝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 <Wilderness>와 <Don’t Get Out Much>는 사진인지, 회화인지 아니면 입체적인 조각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이는 제작 방식을 보면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Wilderness>는 채색한 이미지를 프린터로 인화한 후 자르고 붙여 입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회화를 프린트해 사진화했고, 사진을 조각 형태의 재료로 사용했다. 여기에서 다시 채색을 통해 입체적인 회화를 완성했다. <Don’t Get Out Much>는 수채화와 사진을 이어 붙여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렇게 만든 이미지는 모두 자연을 닮았다. 마치 우리의 모든 것은 자연에서 왔음을 말하는 것처럼. 그 덕분인지 어떤 묵상을 경험하게 한다.

차학경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영화,비디오,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펼치던 촉망받는 한국계 예술가이자 이론가였지만 미완의 작품과 논문을 남긴 채 31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작가다. 그녀의 생은 짧았지만 그녀가 남긴 작품은 여전히 시간을 품고 있다. 특히 타국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그녀의 작품에서 빼놓을 없는 점은 다양한 언어다. 불어, 영어, 라틴어, 한자, 우리말을 포함한 그녀의 작업은 언어와 언어 사이에 놓인 고독하고 예민한 이방인의 태도에서 출발한다. 표상과 표의에 대한 관심, 의도적인 모호성 추구, 언어 형태의 분해, 도상과 문자의 결합 등을 통해 언어의 안쪽과 바깥쪽을 넘나들며 언어가 가진 장벽을 탐구하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과거와 현재, 역사와 허구, 이미지의 언어가 교차하는 종이신문의 형태로 공간 안에서 지속적인 메시지를 전달해나간다. 이승철은 동덕여대 동앙화과 교수로, 한국화와 한지에 대한 연구를 계기로 예술가로서의 물성에 대해 갚이 탐구한다. 그의 예술에 대한 탐구는 책으로부터 비롯됐고, 이는 그가 책을 수집하게 된 계기다. 그는 주로 한국이 서구에 막 알려졌을 무렵 한국에 대해 서구인들이 기록한 책을 모았다. 여기엔 우리가 미처 올랐을 문화, 서지학, 재료학, 식물학, 자연학 등에 관한 내용이 면밀하게 담겨 있었다. 오랜 세월을 품은 책이 한국문화를 성찰하고 응시하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 모인 작품을 종이작품이라고 단정할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모두 종이라는 물리적 형태의 매체를 통해 시각예술의 지평과 확장 가능성을 모색했다는점이다.

 

종이는 이렇게 다루는 사람의 태도에 의해 하나의 시각예술이자,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으로 자리한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잊힌 아날로그의 물성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테다 무엇보다 전시가 남다른 건 하나의 기획에 머무는 것이 아닌, 전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창작공동체, 닻프레스의 북프로젝트를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발행한다는 데 있다. 전시 소개를 담은 ‘도록’과 뭐가 다르냐고? 오히려 한 권의 잡지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이 한 권의 책은 시간을 품고,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로 지속적으로 변모할 것이다 전시는 12 월 29 일까지 열린다.
 

- 글 : 서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