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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 초기 프로세스들이 일으키는 '균열' 사진매체의 기본과 사진가의 태도 질문하는 <Tracing Light>



 뒤샹(Duchamp)이 만 레이(Man Ray)와 함께 작업한 'Dust Breeding'(1920)은 여러 달 동안 유리판 위에 쌓인 먼지를 촬영한 것이다. '먼지 양육하기'라는 작품 타이틀과 그들의 서명이 없었다면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사진이다. 이 대가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만 레이는 이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도 사진을 인덱스화 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레이오그래프'(Rayofraph)를 선보인 바 있다. 이것은 빛이 만들어낸 예측불가능한 우연의 '흔적'으로, 꿈속의 이미지처럼 인화지 위에 맥락 없이 가라앉아 있거나 가끔은 실제 형상을 닮기도 한다. 그가 활동했던 1920년대는 사진의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각축의 장이었다. 일군의 초현실주의 운동에서부터 알렉산더 로드첸코, 엘 리시츠키, 존 하트필드, 라즐로 모홀리나기 등이 작품의 의미를 강화하기 위한 파격적인 형식을 선보이면서 전통적인 시각들을 해체하던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는 카메라 없이 만들어낸 빛 그림인 '포토그램'이 성행하기도 했다. 과연 전기와 라디오의 시대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방출하려는 욕망들이 다채롭게 개화한 시기라 할만하다.


19세기 사진가들의 행위 재현한 전시

오랜만에 사진의 순연한 욕망(흔적, 얼룩을 이해하려는 욕망)을 볼 수 있었던 전시, <Tracing Light>(주상연 기획, 유진갤러리, 6.7~7.31)의 작품들은 대부분 신비하면서 거칠고, 흐릿한 영상에 비균질적인 이미지들이거나 원, 막대기, 나선형 등 오브제와 재료들의 기하학적인 형태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형태는 빛의 반사에 의해 감광면(유제면) 위로 이동된 물리적 자국의 결과의 뿐이다. 사라져가고 상실되어가고 있는 것을 다시 불러들이고, 현재와 과거가 서로 겹치면서 새로운 사진적 공간을 만들며 광화학적 흔적(trace)으로서의 사진의 본질을 추적해나가는 것. 그것은 사진적 인덱스 개념(물리적 연결, 특이성, 증명성, 지칭성의 원리)을 찾아 가는 길이고, 그 노정엔 감광물질과 빛 그리고 어두운 상자(카메라 옵스쿠라)속에서 웅성거리는 내밀한 실재들의 도래를 '기다리는 행위'가 주요한 매개항으로 위치한다. 아무리 멀어도 가깝게 다가오는 '흔적'은 그 매체가 사진이기에 더욱 짙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고전적인 방법론에 대한 설득력을 강화시킨다. 세계의 성소들과 미국 서부의 광활한 풍경, 작업실에서의 소소한 기억에서 태양의 궤적까지, 전시에 참여한 작가 모두는 작품제작의 프로세스에서 초기 사진가들의 사진적 행위를 그대로 투과해내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던지는 혁명의 씨앗

파리의 거리 사진가의 앗제처럼 8x10인치 대형카메라로 촬영한 후 '프린팅 아웃 페이퍼'로 인화를 하는 린다 코너(Linda Connor), 핀홀 카메라와 포토그램으로 작업하는 클리아 맥키나(Klea Mckenna), 콜로디온 습판(Collodion Wet-Plate)의 벤 닉슨(Ben Nixon), 직접 제작한 핀홀카메라의 필름면에 인화지를 장착한 후 장시간 노출로 태양을 찍어내는 크리스 맥카우(Chreis McCaw) 등은 사진사 초기의 기술적으로 아주 미약한 형식들을 고수해내고 있다. 사진사를 통해 19세기 중엽은 사진의 유제와 사진사의 뇌관이 혁명적으로 말랑말랑할 때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었던 열린 가능성의 시기임과 동시에 새로운 소비 주체들이 사진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속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치 벤 닉슨의 풍경사진 속 화산열에서 발생하는 뜨거운 균열들처럼 욕망을 태우고, 자국을 남기고, 인식의 가능성을 되도록 많이 확보하려는 욕구들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각 시대별, 특히 새로운 세기의 초입엔 혁명의 씨앗이 함께 도래한다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라면 이미지의 의미론으로 팽배해 있는 '디지털 프로세스라는 전체'에 얼룩으로서, 균열을 일으킬만한 씨앗도 이미 파종되지 않았을까.


사진의 여정 돌아보는 사진적 행위

뒤샹이 1920년에 제작한 'Dust Breeding'은 유리판위에 수개월동안 쌓인 먼지를 2시간의 노출시간을 주어 촬영한 것으로, 유리판 위의 먼지, 그먼지 위의 자국은 제라틴 실버 프린트 위의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그것들은 일회적이고, 우발적이고 곧 사라질 것이기에 의미망 안으로 쉽게 포섭되지 않는다. 실재의 흔적(trace) 혹은 틈(void)으로 존재가능했기에 사진은 줄곧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릴 수 있었다. 대상의 전체를 동일하게 옮겨오거나, 상징 구조 안에서의 의미생성 기호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비가시적인 것들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며 시각의 무의식을 열어준 것이다. 그러한 여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Tracing Light>전은 사진가이자 출판인, 뮤지엄을 운영하며 전시기획까지 도맡고 있는 주상연의 행위처럼,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사진적 행위'를 깊게 음미하게 한다.




글ㅣ최연하(독립큐레이터), 디자인ㅣ이정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