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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를 지우고 바다를 남기다

바다의 형상을 쫓는
웨인 레빈 Wayne Levin



   미국에서 가장 마지막인 50번째로 주로 승격한 하와이는, 그 지역명과 행정구역으로서의 의미를 압도할 만큼 커다란 상징성을 가진다. 하와이가 상징하는 것은, 캘리포니아가 상징하는 것처럼 복합적이지도 않고 네브래스카처럼 단순하지도 않다. 뉴욕처럼 너무 흔하지는 않지만 와이오밍처럼 낯설지도 않다. 또한 텍사스처럼 남성적이지도 않고 루이지애나처럼 편향적이지도  않으며, 조지아처럼 보수적이지도 않으면서 플로리다처럼 그 자유분방함이 위태롭지도 않다. 우리에게 하와이는 오랫동안(막상 실천하기보다는 막연히 꿈만 꾼다는 의미에서) 이상적인 신혼 여행지였고, 현실에 실재하는 파라다이스의 가장 유사한 대체어였다.
   하와이에 그러한 상징성이 부여된 데는(미국 땅이라는 무게감과 미국과 일본 자본이 대거 유입된 세련됨에 덧붙여)단연 하와이의 바다가 일조한 면이 크다. 하와이는 바다뿐만 아니라 자연이 가진 자산의 가치가 크지만 상징성이라는 지분에선 바다가 적어도 9할 이상은 차지한다.
그 바다에서 또 다시 9할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옥빛인지 쪽빛인지 모를 바다의 색깔과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물에서 노니는 형형색색의 해양생물들이다. 평소라면 휴대전화를 꺼내는 일조차 귀찮아하는 사람들에게 방수카메라를 들게 하는 것이 하와이 바다 속의 풍경이다. 육지에는 존재하지 않은 다채로운 색상의 향연은 하와이의 상징성 중에서도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하와이의 상징성 중의 상징을 가차 없이 제거한 사진가가 있었다. 쪽빛 바다가 검게 변하고, 바다 속에 뿌려진 무지개처럼 황홀했던 물고기 떼의 흐름은 먹물처럼 흐려져 가라앉았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상징성을 거세당하고 힘을 잃고 쓰러질 줄 알았던 하와이의 바다는 여전히 굳건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와 의미를 부여받으며 우리의 낡은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벌써 50년 가까이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가 바로 웨인 레빈(Wayne Levin)이다.
   194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웨인 레빈은 12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에게 받은 브라우니 카메라로 사진을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an Francisco Art Institute)와 뉴욕의 프랫(Pratt)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하와이로 이주해 사진을 가르치며 본격적으로 수중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공간과 하나가 되어 유기적인 풍경을 만드는 그의 수중사진은 오는 12월 28일까지 경기도 광주의 닻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Flow, 무아 경 無我 景>전에서 처음 한국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닻미술관(Datz Museum of Art)이 주최하는 이번 전시에는 웨인 레빈 외에도 미국작가 바바라 보스위스(Barbara Bosworth)와 한국 작가 김윤수등 3명의 사진, 드로잉, 설치가 선보인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는데 하와이에는 언제부터 살았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쭉 자랐다. 하와이로 이주하게 된 것은 해군을 제대한 후인 22살이 되어서였다. 그때가 1967년이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5년을 지내며 사진학교(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와 뉴욕의 프랫)를 다녔다. 또한 데이턴 아트 인스티튜트(Dayton Art Institute)에서 입주작가로 지내는 2년 동안은 오하이오에 머물기도 했다.


하와이만큼은 아니어도 바닷가와 가까운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물놀이를 즐겼는가?
어렸을 때와 특히 청소년기에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낚시하고 보트 경주를 무척 즐겨했다. 다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는데 조금 성장한 후로는 보트 경주를 더 즐기게 되었다.


수중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70~80년대에 서핑과 보디서핑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프랫을 졸업한 1982년에 하와이 대학교(University of Hawaii)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자리를 제안 받았다. 그때부터 니코노스 IV 수중 카메라를 구입해 물속에서 서퍼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하와이의 바다 속 색상은 무척 다채로울 듯한데 촬영을 모두 흑백으로 한 이유가 있는가?
처음에는 컬러로 촬영했는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진이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고 그나마 살아 있는 색상은 모두 파란색뿐이었다. 그래서 흑백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흑백으로 바꾸고 나니 콘트라스트를 내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고, 사람들이 헤엄치고 자나간 자리가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물결을 헤치고 간 게 아니라 구름 사이를 날아간 듯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의 서퍼들 사진에 하늘에 떠 있는 구름사진을 함성한 줄 알기도 했다. 하지만 톤을 조정한 것 외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았다. 처음 한동안은 카메라 2대를 가지고 다녔다. 하나에는 플래시를 달고 컬러 필름을 넣었고, 또 다른 카메라에는 흑백필름을 넣어놓고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컬러와 흑백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컬러도 흑백도 제대로 나오자 않게 되어버렸고, 그 뒤로 흑백 작업만 하고 있다. 아직도 물 밖으로 나오면 컬러 촬영을 하긴 하지만 물속에서는 언제나 흑백이다.


수중생물들도 자주 촬영하는데 일반적인 야생동물 전문 사진가들의 그것과는 또 다른 것이 있다. 스스로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도 그 점을 자주 생각한다. 대부분의 수중사진가들은 야생동물 사진가들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야생동물 사진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야생동물 사진가들은 자연을 묘사하거나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반면 나는 특별히 무엇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는 없다. 어떤 특정한 동물이나 종을 설명하기보다는 수중 생태계를 담은 풍경의 일부로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바닷물이 눈에 어떻게 비추이는지, 그 무게감과 촘촘함, 그리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주변의 환경에 더 관심을 두고 수중 생명체들이 그것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더 집중한다. 사진으로 자연의 미스터리를 푼다기보다는 더욱 심화하는 쪽이다.


수중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지금과 같은 단계에 이르렀는가?
바다에 나가서는 특별히 촬영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서퍼에서부터 스쿠버다이버, 프리다이버, 카누를 타는 사람들, 낚시하는 사람들, 수영을 배우는 내 딸까지 다양하게 다루었다. 또한 수중생물들과 좌초된 선박들, 해양 풍경과 물속의 물고기 떼까지도, 유일한 제한이라면 흑백이라는 점이었는데, 30년 넘게 흑백 작업을 하다 보니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 같다.


물속에서는 필름을 교환하기 어려운 등 제약이 많을 것 같다.
맞다. 아무래도 필름을 물속에서 바꿀 수 없으니 필름을 다 소모하고 난 뒤에 정말 멋진 장면이 나타나 담지 못한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서로 다른 렌즈를 낀 두 세 대의 카메라를 준비하거나 의뢰를 받은 작업의 경우에는 조수까지 동행해서 카메라 4대를 들고 잠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필름은 금방 소모된다.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면 그러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데, 디지털 작업은 하지 않는가?
지상에서는 디지털을 사용한다. 그러나 수중에서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원하는 필름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작은 크기의 카메라와 니코노스의 광학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이라, 니코노스를 위한 디지털백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소니 카메라에 니콘 렌즈를 껴서 사용할 수 있는 하우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라도 디지털카메라를 사용 않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의뢰받은 작업에만 조수가 동행한다고 했는데 촬영은 주로 혼자 하는가?
혼자 작업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내가 잘 아는 지역에 한해서만 혼자 한다. 나처럼 전문가이든 아니든 종종 다른 사람과 함께 잠수하기도 하는데, 그중에는 과학자들도 있다. 2009년에 미국해양대기관리처(NOAA)에서 초대받아 하와이 북서쪽 해양 탐사에 동행하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외진 섬들을 돌아다녔다.


촬영시 해변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나가는가?
보통은 해변과 가까운 곳에서 프리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하와이의 수중 지면은 갑자기 급격하게 떨어진다. 해변가에서 200~300미터만 나가도 수심이 30미터 이상이 된다. 고래나 돌고래, 상어, 참치, 삼치와 청새치 등 큰 해양생물들을 보기 위해서는 해변에서 5~16킬로미터 이상은 나가야 한다. 이때는 친구의 보트를 타고 간다. 내게는 카약 외에는 큰 배가 없다. 예전에는 카약을 타고 먼 거리까지 가기도 했지만 너무 위험해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수중 촬영을 하면서 가장 큰 위협이나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상어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가장 위험 한 것은 해류다. 조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휩쓸려 가버린다. 잠수할 때는 항상 해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해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용승류와 하강류도 조심하지 않으면 물속에서 급격하게 올라가거나 수심 깊이 내려갈 수 있다. 사진가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좋은 기회를 만나는 것과 그 기회가 생겼을 때 미리 준비되어있는지에 관한 것인 것 같다.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나거나 벌어지는 상황들을 놓치거나 미처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장비를 사용하는 스쿠버다이빙과 장비 없이 하는 프리다이빙을 모두 하는데, 사진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아무래도 스쿠버다이빙을 하면 시간이 여유롭다. 천천히 다가가서 오랫동안 촬영에 임할 수 있다. 하지만, 소음이 심한 편이고 그만큼 많은 생물들을 쫓아낸다. 그에 비해 프리다이빙은 매우 조용하고 수중생물들에 아주 가까이까지 접근 할 수 있다. 다만, 숨을 쉬려면 매번 물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빠르게 작업해야 한다. 보트를 타고 멀리 나가서 큰 물고기 등을 만나면 프리다이빙이 휠씬 유리하다. 준비할 필요 없이 빠르고 조용하게 물속으로 들어가서 바로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와이 연안 외에도 다른 지역에서 촬영했는가?
항공사인 콘티넨털미크로네시아의 잡지 일을 하면서 태평양의 섬들은 거의 다 가 본 것 같다. 쿠바 근처 바하마와 코스타리카에서 5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코크섬도 가보고 캘리포니아 해안과 로스앤젤레스 근처의 채널 아일랜드(Channel Islands)에서도 잠수를 했다. 모두 다 다르고 각자의 특색이 있다. 하와이 북서쪽에 있는 파파하노모쿠아키아(Papahanaumokuakea)는 하와이 해안과는 또 다른 곳이다.


새 무리를 촬영한 작업도 있다. 어떤 작업인가?
새 떼를 촬영하는 것도 좋아한다. 다만 내가 사는 섬에는 큰 무리의 새 떼를 볼 수 없어 촬영이 쉽지 않다. 영국에서 찌르레기 떼를 촬영하기도 했고 오레곤과 캘리포니아에서 이동 중인 철새 거위 무리를 촬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제주도에서도 촬영을 했다. 아름다운 숲에 있는 까마귀 떼를 촬영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새 사진은 대부분 컬러로 촬영했었고, 주로 일출과 일몰 때에 촬영해서 색상이 좋았다. 다만, 최근에는 모두 흑백으로 전화하는 중이다. 이번에도 흑백이 더 좋은 것 같다. 새 사진을 시작하면서 사용한 컬러에서 다시 손을 떼기까지 3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글 이철승(미국 로스앤젤레스 통신원)